내게 주는 성적: B+
B+면 괜찮다 싶다. 꽤 나쁘지 않은 5년이었다. 재밌는 일도 많았고, 배운 것들도 많았지만, 또 슬픈 일도, 아쉬운 일도 많았다. 몇 가지 빼면 정말 완벽한 대학생활이었을 텐데. 그런데 그런 점이 또 우리가 우리를 인간적으로 만드는 일이 아닌가 싶다. 앞으로 2012년에서 2016년까지의 삶이 아주 그리울 것 같다. 10년 뒤, 20년 뒤 돌아봤을 때 내가 대학 때 배우고 느낀 것들이 헛되지 않았음을 깨닫게 되고 싶다. 그렇게 살려고 노력할 것이고 그렇게 살 것이다.

I. 2012년 가을부터 2016년 겨울까지, 학년 별로 지난 날들을 돌아봤다.

1학년 1학기. 새벽 5시쯤에 미친 짓.

2012 – 2013 (1학년)

  • F를 처음 받아봤다
  • 스프링클러를 처음 터뜨려 봤다
  • 2/3은 농구와 교회로, 1/3은 약간의 공부와 놀이로 보냈다
  • 지금도 같이 살고 있는 친구를 만났다

(1학년 2학기, 한인학생회 종강총회에서 커뮤니케이션 형 누나들과 함께.)

대학교에 처음 입학했다. 돌아보면 썩 적응을 잘하지는 못했다. 성적만 봐도 회계학으로 경영학부에 입학하고 수학에서 C를, 노사관계학에서 F를 (후에 재수강해서 A 받긴 했다) 받았다. 농구와 교회가 대학생활의 2/3를 차지했고 나머지 1/3은 친구들과 도서관에 가서 노는 것과 가끔 공부하는 정도였다. 그래서 나는 2학년 때부터 신입생들에게 “결국 대학생활의 성공 여부는 첫 학기에서 판가름나. 누가 더 빨리 정신을 차리느냐지. 돌대가리 몇 빼고는 대부분은 결국 정신을 차리긴 하거든.” 라고 말해왔다. 이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고등학교와 대학교는 너무 다르다. 그래도 교회에서, 또 학교에서 나름 재밌게 첫 대학생활을 보냈다. 이때 만난 친구들은 아직도 만난다. 그중 한 명은 나랑 같이 산다.

(1학년 2학기 PAR기숙사에서.)

(4년 만에 아저씨가 된 영권이.)

2013년 봄학기, 그러니까 1학년 2학기 때는 기숙사 방 스프링클러를 터뜨렸다. 707호에 살았는데, 207호까지 다 물로 잠겼다. 덕분에 IT (기숙사 이름) 전설로, “포세이돈”으로 남게 됐다. 기숙사 측에서는 내게 천만 원이 넘는 비용을 청구했으나 엄마가 수 년 전 보험 판매원에게 속아서 들게 된 화재보험 덕에 백만 원 조금 넘게 내고 마무리할 수 있었다.

당시 IT에 지불했던 비용 $10,812.46. 이건 보험금으로 처리한 거고 백만 원 조금 넘는 금액은 따로 지불했었다. ㅠ

2013 – 2014 (2학년)

  • 사업을 시작했다.
  • 지금 가장 친한 친구들을 만났다.
  • 일주일에 책을 3권 정도는 읽었다.

 

Colorable이 있었던 사무실 실내.

2학년. 본격적으로 전공과목인 회계학을 접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와는 너무 맞지 않았다는 생각을 했다. 본질에서 회계는 high-level보다는 detailed work이다. 물론이건 핑계고 그냥 수업이 너무 재미없었고 점수가 나오지 않았다 (ACCY 201은 B+, 202는 B가 나왔을 거다). 대학생활을 돌아보면 이때가 제일 재미있었다. 2학년 때 지금 가장 친한 친구들을 만났고 (얘들은 신입생으로…. 어린것들) 처음으로 열심히 공부해서 Dean’s List에도 올랐다 (그때 18학점 3.85 받았을 거다). 농구도 여전히 열심히 했고, 대신 공부도 같이 열심히 했다. 책도 이때 가장 많이 봤던 것 같다. 일주일에 3권 정도 읽었다. 특별히 광고와 마케팅에 관심이 생기면서, 광고 관련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와 더불어 광고학 수업을 듣고 공부하면서 “어, 이거 일로 해보면 정말 재밌겠는데?” 라는 발칙한 생각도 2013년 가을에 처음 했다.

BIF 1층. 4년반 동안 거의 매일 이곳을 왔다.

근데 이때 내가 처음으로 거침이 없다는 걸 느꼈다. 하고 싶은 말은 다 해야 직성이 풀리고, 그것도 돌려서 말하거나 친절하게 말하지 못하고 속에 있는 생각 그대로를, 혹은 팩트 그대로를 전달했다. 그래서 이때 나로부터 상처받은 사람들이 꽤 있었던 것 같았다.

2014년 봄, 2학년 2학기 때 창업을 했다. Colorable LLC. 시작한 배경은 잘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처음엔 색깔을 검색해 쇼핑할 수 있는 쇼핑 허브를 만들려고 했다. (예를 들어 적색을 고르고 원하는 상품 카테고리를 filter 하면 그 색을 가진 상품들을 보여주는 식)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이게 더 잘 됐을 것 같다 (ㅎㅎ). 지금 돌아보면 충분히 할 만한 아이디어였지만, 그때 당시엔 넘기에 너무 어려운 산으로 보였다. 그래서 디지털 광고 에이전시로 피봇을 했다. 크리에이티브 중심 에이전시로 말이다. 물론 이것도 2015년 3월에 접었다.

Colorable 당시 로고.

2014 – 2015 (2.5~3학년)

  • 사업을 접었다.
  • 파수닷컴에 클라우드서비스기획 인턴으로 근무했다.

2014년 가을학기는 휴학하고 사업에 집중했다. 그래서 나는 한 학기를 더 다녔다. 지금은 IBM Design, DigitasLBi (메이저 디지털 광고 에이전시. Razorfish, R/GA 등 한국에서도 유명하다), Whirlpool 등에서 일하고 있는 창업멤버들과 같이 일했다. 이때는 아무래도 학점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학생의 입장보다 사업가의 마인드가 컸기 때문에 자기 계발에도 더 신경 썼다. 매일 더 많은 양의 책을 읽으려고 노력했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다녔다. 2015년 봄학기에 복학했는데, 이때는 그냥 재밌게 학교에 다녔다.

사업을 접어야 만하는 아쉬움을 뒤로 한 채 1년간 사업하며 배운 것들을 정리하고 이걸 토대로 파수닷컴 (www.fasoo.com)에 인턴 포지션에 합격했다. 감사하게도 면접관이셨던 박정훈 상무님이 특이한 경력을 좋게 보셨나 보다. 2015년 여름에 파수닷컴 B2C 사업인 클라우드 서비스 본부에서 서비스개발팀 기획 인턴으로 일했다. 클라우드 서비스본부에서는 단순 번역 업무부터 신제품 기획과정에도 참여했었고, 다른 인턴 형과 함께 우리 아이디어로 기획 및 개발을 해서 프로토타입을 만들어 보고, 신제품 마케팅 전략 및 과정을 돕기도 했으며 대표님을 비롯한 임직원들 앞에서 (당시 약 280명 정도 있었던 것 같았다) 20분 정도 강의도 해봤다. 그때 만난 최종신 본부장님, 김숙희 부장님, 중석이 형, 그리고 지금은 UC버클리 졸업을 앞두고 후에 Linkedin에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가게 될 (존경!) 연후형을 만났다. 1년 반이 지났어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파수닷컴 17층 휴게실에서 연후형과 함께)

 

(파수닷컴 내 자리).

IT 기업에서, 그것도 전략적인 부서에서 일하게 된 건 너무나도 큰 행운이었다. 큰 것들을 보고 배우면서도 작은 것들에도 신경 쓸 수 있는 능력을 키울 수 있었다. 충격이었던 것은, 내가 했던 한국 인턴생활과 다른 회사에서의 인턴생활은 너무나도 다르다는 것이었다. 나는 9시까지 출근, 그리고 18시가 되면 칼 같이 퇴근했고 (안 바쁠 때면 다른 직원들도 마찬가지였다), 매일 3시에 간식이 제공됐으며, 회식문화도 즐거웠다. 대표님부터 산업연구원으로 일하는 사원 형까지 전부 사람들이 친절했고 같이 일하기 좋은 팀원들이었다. 이 회사는, 적어도 클라우드 서비스본부는 뭘 하든 크겠구나 싶었다. 얼마 전 spin off 소식을 들었다. 아주 잠깐이고 이바지한 부분도 미미하지만, 아직도 응원하고 있다.

2015 – 2016 (3학년)

  • Best GPA ever since 2012
  • Preferred to be a loner for some reason.
  • Joined IBC as a consultant

내 인생에서 가장 다크한 시기가 아니었나 싶다. 학업은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다. 성적도 괜찮은 편으로 나와줬고 어려운 편도 아니었다. 다만 왜인지 모르게 사람을 대하기가 꺼려졌다. 그냥 혼자 사는 게 편했고 혼자 있는 게 좋았다. 누구나 한 번쯤은 이런 시기가 온다지만 나는 꽤 길게 왔던 것 같다. 이때 성적이 제일 좋았다 (4.0). 학점도 엄청 많았고 로스쿨 준비를 위해 시험공부도 병행했지만 아무래도 사람들과 아예 어울리지를 않았다 보니 남는 게 시간인지라 점수는 쉽게 받을 수 있었다. 책도 나름 많이 읽었고 미래를 생각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암울한 시기였지만 그 가운데서도 얻을 것은 많았다. 가장 의미 있었던 시간 중 하나는 IBC (Illinois Business Consulting)에서 보낸 시간이다. ERP 프로젝트를 맡아 팀원들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면서 자연스럽게 나는 성장했다. 팀워크도, 생각하는 방식도, 모든 면에서 좋아졌다. 결과적으로 이때 컨설팅이 너무 재밌고 다이내믹해서 컨설팅을 파기 시작했다.

2016 여름 ~ 가을 (4학년)
여름엔 울산과학기술원과 일리노이대학교가 합작으로 만든 GMCP 컨설팅 프로젝트에 시니어 매니저로 일했다. 화학 신소재 기업과 자동차 실런트 제조 기업을 맡았다. 힘들었지만 색다른 경험이었다. 동시에 IBC에서도 씨니어 컨설턴트로 부동산 투자회사를 컨설팅했다. 구직활동도 활발히 했고 친구들과도 많은 시간을 보냈다. 롤을 시작했다. 롤을 2개월 정도 하고 나니 지금은 배치 전을 치르고 있다. 브론즈 5가 나올 것 같다 ㅠㅠ.

II. 내가 배운 것들

대학은 더 나은 사람이 되게 해주는 곳이다.
대학은 당신이 취업을 하게 끄름 도와주는 곳이 아니다 (물론 partially). 당신이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기회를 주고 방향을 제시하는 곳이다.

사람이 제일 중요하다.
학점이나 졸업하자마자 취직은 사실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1학년 때 심었던 씨앗이 졸업 때 열매가 되어 돌아왔냐는 것이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인간관계에서 상처를 받고 서로 등을 돌리며 또 그 영향으로 인해 다른 일들도 하지 못한다. 사람이 제일 중요하다. 그 무엇보다도 주위 사람들에게 잘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이들은 당신이 돈이 있든 없든, 유명하든 유명하지 않든 상관하지 않는다. 당신이기에 받아주고 함께 해주는 것이다. 사람과 함께함이 이 세상 가치 중에서도 가장 큰 가치임을 명심하자.

윤나, 302친구들, 은우, 다연, 행크형, 동영이형, 신디, 정민이, 지영, 찬영, 라현, 윤화형, 한길이형, 희영이누나, 유빈이누나, 교회와 찬양팀 사람들, 농구팀 사람들, 비록 사진은 없지만 내가 4년 반동안 알고 지낸 모든 사람들이 제일 큰 가치고 자산이다.

동영이형 미안. 지금은 머리 길렀음!

그외 분들은 저랑 같이 찍은 사진이 없거나..제가 못 찾아서..

Strive for Greatness.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 하는 일을 더 잘할 수 있게 되는 것, 더 나은 삶을 사는 것, 더 많은 것을 보고 누리며 더 큰 행복을 위해 사는 것. 이 모든 것은 “Strive for Greatness”로 함축할 수 있다. 이 세상은 이미 불행한 곳이다. 그 가운데서 여러분과 내가 최선을 다해야 살아야 함은 우리에게 주어진 임무이자 상일 것이다. 최고가 (그 어떠한 분야에서든 – 가족, 삶, 행복, 일, 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우리에게 기쁨을 주기도, 아쉬움을 남기기도 한다. 어떠한 상황에서든 최고를 바라보고 노력하자. 원하던 대학에 입학했다고, 원하던 기업에 입사했다고 끝난 게 아니다. 오히려 그때부터가 시작이다.

며칠 전 길을 걷다가 생각난 말이 있어 옮긴다.

“We are still living in day 1.” Keep thinking, keep learning, keep innovating. There’s always room for growth. What gets you to the table is not your title, nor your achievements. It rather is your ability to think different. Strive for greatness.

III. 아쉬운 것들과 앞으로 해야 할 일

위에서 사람이 제일 중요하다고 말은 했지만, 사실 내가 그 점을 배울 수 있었던 것은 나 자신이 사람의 중요성을 오랜 기간 깨닫지 못하고 살아왔기 때문이다. 4년간 아쉬운 점 중 하나는 내 주위 사람들에게 더 잘할 수 있었음이다. 더 베풀고 더 나눌 것을 후회한다. 또 더 많은 사람을 만나지 못했음을 후회한다. 많은 사람을 깊게 안다는 것은 그만큼 내가 인심이 좋다는 증거일 것이다. 또한, 내 인생에도 좋은 자산이 되어줄 것이며 행복을 누리고 사는 삶의 기본이 되어줄 것이다. 마지막으로 아쉬운 것은 내 학점이다. 맞다. 누누이 말하지만, 학점은 절대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내 대학생활의 산물 중 하나인 것은 사실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학점 역시 노력했어야 함은 변함이 없다. 확실히 아쉬운 부분 중 하나다.

앞으로 해야 할 일

Strive for Greatness를 지키려고 노력할 것이다. 나는 졸업 후 IBM GBS에 컨설턴트로 입사하게 된다. 지금부터 시작이고 내가 이곳에서 내 역량의 200%를 만들어내고 싶다. 그만큼 노력해야 하며 그에 맞는 자신감 또한 유지해야 할 것이다. 건강을 위해서도 노력해야 하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좋은 벗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IV. 후배에게 해주고 싶은 말

사색하라.
나만 느낀 건지 모르겠는데. 대학생들은 생각을 안 하고 산다. 학업으로 인해 바빠서, 대인관계 지키느라 바빠서, 혹은 알바하느라 바빠서 생각할 시간이 없는 것도 잘 안다. 나도 대학을 다녀봤으니까. 근데 생각 안 하고 살면 모든 분야에서 뒤처진다. 돈이 다가 아니고 명예가 다가 아니고 취직이 다가 아니라고 한다. 맞다. 근데, 생각 안 하고 살면 그런 것들보다 너의 인생이 그냥 뒤처지는 거다. [뒤처짐]을 어떻게 define 하느냐에 따라 다를 것이라고? 아니다. 생각 없는 인생은 그 자체로 그냥 뒤처진 거다. 무조건 생각해라. 그냥 얕은 생각만 하고 살지 말고, 너에게 깊은 고민이 되는, 깊숙한 생각을 해라. 주제는 상관없다. 깊은 생각은 그 자체로 생산성이 높고 무슨 일을 이어서 하게 되든 간에 결과가 좋을 가능성이 크다. 어렵다면 처음엔 그냥 혼자 산책을 자주 해라. 산책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너도 모르게 생각을 하게 될 거다.

너가 잘하는 걸 해라.
“나는 졸업하고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모르는 게 어쩌면 맞는 걸 수도 있다. 근데 4학년 막바지까지 모르게 될 수도 있다. 대학교는 본인이 잘하는 걸 발굴하고 성장하며 다른 분야에도 적용하는 학습을 반복하는 장소다. 본인이 잘하는 걸 찾으면 그 뒤부터는 별로 어렵지 않다고 생각한다. 잘하는 걸 하다 보면 잘하니까 재밌어진다. 게임도 잘해야 재밌지, 못하면 재미없다. 일에 흥미를 붙여야 성과가 나오는 법. 잘하는 걸 찾아라.

잘하고 있다. 내가 해왔던 것들보다 훨씬 더. 여러분 앞에 놓인 길은 나와 내 선배들이 지나간 길보다도 더 길고 빠를 것이다. 그저 공부만 하지 말고, 한국인들과만 놀지 말고, 좀 더 넓게 보고 깊게 생각했으면 좋겠다. Striving for Greatness를 지키려 노력했으면 좋겠다.

마무리
내게 주는 성적: B+
B+면 괜찮다 싶다. 꽤 나쁘지 않은 5년이었다. 재밌는 일도 많았고, 배운 것들도 많았지만, 또 슬픈 일도, 아쉬운 일도 많았다. 몇 가지 빼면 정말 완벽한 대학생활이었을 텐데. 그런데 그런 점이 또 우리가 우리를 인간적으로 만드는 일이 아닌가 싶다. 앞으로 2012년에서 2016년까지의 삶이 아주 그리울 것 같다. 10년 뒤, 20년 뒤 돌아봤을 때 내가 대학 때 배우고 느낀 것들이 헛되지 않았음을 깨닫게 되고 싶다. 그렇게 살려고 노력할 것이고 그렇게 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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