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영화를 좋아하는 편이다. 재난영화에서는 생존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야만 하는 상황에서 벌어지는 매우 인간적인 모습을 지켜보는 것을 좋아한다. 그것을 통해서 느끼는 점도 많고 ‘만일 내가 그런 상황에 놓였다면 어떻게 할까’와 같은 질문을 던져도 본다. 영화 보는 것 자체를 좋아하는 편이지만, 재난영화는 특히 재밌게 보는 것 같다.

오늘 영화 <터널>을 봤다. 맞다. 크리스마스는 영화로 시작하고 영화로 끝내야 제맛인 것을. 이 영화를 본 후 내가 느낀 바를 한 마디로 결론부터 지어 표현해보자면 “우리는 잠시 멈춰서 뒤를 돌아봐야 할 필요가 있다.” 인 것 같다. 하정우는 극 중 기아자동차의 세일즈 사원이다. 사건이 터지기 일보 직전에도 세일즈 콜을 하나 close 하면서 성취감을 맛봤다. 근데 터널이 무너지면서 세일즈 콜은 중요하지 않아졌다. 우리가 우리의 삶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 또 한 가지는 바로 우리 삶이, 우리나라가, 또는 우리 사회가 바로 그 무너지는 터널이 되려고 하는 게 아닌가 싶다. 길게 보면 터널로 지나가나 산을 넘어가나 비슷할 것이다. 잠깐만은 편하겠지만 언제든 무너질 터널을 뚫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과연 빠른 것만이, 효율적인 것만이 ‘선’이고 ‘이익’일까?

마지막으로 영화 <터널>은 한국사회의 뿌리 깊은 공리주의 사상을 (물론 공리주의는 서양철학으로 제러미 벤담이 18세기에 구체화했다) 문제 삼는다. 철저한 공리주의 아래 우리는 공익을 위해서라면, 사회의 전체적인 이익을 위해서라면 작은 것 하나쯤은 희생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영화에서도 하도 제2터널 공사 지연 때문에 세금이 낭비되고 전체적인 국가의 효율성이 떨어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국민, 사기업, 정부 모두 하정우를 살리기보다는 하도 제2터널 공사 재개를 선택한다. 물론 이를 비난할 수는 없다. ‘살 사람은 살아야 한다’라는 인식이 전제로 깔려있으니까.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더 크게 우리 사회를 관찰해보자. 우리는 다수의 이익만큼 소수의 이익을 존중해주는 경우가 과연 얼마나 될까? 재빨리 움직이던 발걸음을 멈추고 잠시 호흡을 고를 필요가 있다. 우리의 결정과 인식이 과연 다수가 아닌 모두를 위한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하정우는 자신이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미나에게 물을 제공하고 얼마 남지 않은 음식도 아껴뒀다가 나눠 먹을 생각을 했다 (탱이가 훔쳐먹긴 했지만). 이건 우리 모두가 본받아야 할 행동이다. 나도 나지만, 우리 모두를 위한 사람이 되자. 우리 모두를 위한 사회를 만들려 노력하자. <반지의 제왕>을 쓴 J.R.R 톨킨이 말했다. “Little by little, one travels far”. 우리의 욕심을 아주 조금, 조금만 버리고 그 대신 나눔으로 채워보자. 그걸로 시작하면 반은 이룬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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